잿빛의 미제 사건: 수사 1과의 금기어
Aurora 2023. 9. 16.“미즈하라… 유… 유우린? 이거 뭐라고 읽, …나요…?”
치바는 갑자기 싸해진 사무실의 분위기를 뒤늦게 알아채고 얼굴 가득 의문을 띄웠다. 아리송한 치바와 달리 창백한 얼굴의 다카기가 그의 팔을 붙잡고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슬쩍 보인 사토와 시라토리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다급한 손길에 어영부영 끌려 나온 치바가 파일을 흔들었다. 이거 아직 들고 있, 쉬이이잇!!!!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다카기를 보고 치바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다카기는 구석진 곳으로 몸을 숨기고서야 치바의 팔을 놓아주었다. 아직도 영문을 모르는 얼굴과 조금 전 수사 1과의 분위기를 번갈아 가며 머리에 담은 다카기가 한숨을 쉬었다.
“하필이면 치바가 그걸 집어서 볼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
“대체 뭔데?”
치바의 질문에 다카기가 일전에 시라토리에게 들은 말을 떠올렸다. 이렇게 되니까 미즈하라의 ‘미’자도 꺼내지 말라고 했던 건가요….
‘마츠다 군의 동기였지. 그의 순직 후에는 견디지 못하고 바로 사직했지만. 공안 출신이기도 했어. 부서 이동을 특이하게 한 편이지. 처음에는 공안에서 온 사람이라 모두가 경계했는데, 성격이 그래서 다들 어느새 제대로 된 동료로 인정해주더군. …그러니까 수사 1과 내에서는, 특히 사토 씨의 앞에서는 미즈하라 유즈의 ‘미’자도 꺼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게 우리 모두에게 좋으니까. 사건 파일에서 봐도 무시해.’
“그 이름은 꺼내지도 말라고 그랬어. 특히 사토 씨나 시라토리 씨, 메구레 경부님 앞에서는 절대로 꺼내지 마.”
“미즈하라 유즈가 대체 누군데 이래? 그냥 그만둔 형사 아니야?”
“그거 수사 1과에서 말하면 안 되는 이름이잖아.”
의문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이어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다카기는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고 이마를 짚었다. 목소리의 주인, 미야모토 유미는 뚱한 표정으로 구석에 숨어있는 두 남자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런 유미에게 치바가 기회다 싶었는지 질문했다.
“미와코 보러왔더니… 미즈하라 씨 이야기는 왜 하고 있는 거야?”
“오늘 사건 파일 정리하는데 나와서요. 정말 누구길래 그래요?”
“으음…. 뭐랄까… 마츠다 군의 동기랄까. 그 일 이후로 그만두고 잠적했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그게 다야. 어쨌든 알아둬. 분위기 암울해지거나 싸해지기 싫으면.”
유미는 치바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뒤를 돌았다. 분위기 망했겠네. 미와코는 이따가 보러와야겠다. 다카기와 유미의 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치바 카즈노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뼛속까지 깨닫게 된다. 정말 금기였구나.
경시청에 도착한 편지 한 통이 아주 높으신 분부터 말단까지 전부를 뒤집어놓았다. 편지를 가져다주던 행정직원에게서 수사 1과의 몫을 받아오다가 그 이상한 편지를 알아챈 사토가 손을 덜덜 떨며 메구레의 앞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보낸 이, 나오키 시게루. 받는 이, 경시청 형사부 수사 1과 강행범 3계 미즈하라 유즈みずはら ゆず 경부. 수신인을 확인한 메구레가 침음을 삼켰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쿠로다에게 보고를 올렸다. 알겠다는 짧은 답변 이후로는 어떤 소식도 내려오지 않았다. 언제나 꽤나 떠들썩하던 수사 1과의 분위기는 가라앉아있었다. 모두가 동일한 생각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지나가던 유미는 생각했다. 상부의 답은 사흘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시라토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익숙한, 잊을 수 없었던 사람이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얇은 미성이 정적에 빠진 수사 1과에 내려앉았다.
“…미즈하라 유즈입니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오늘부로 잠시간 복직하게 되었습니다.”
유즈는 익숙한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요즘 들어 더욱 자주 가는 포와로의 앞에서 가만히 서서 한참을 눈만 깜빡였다. 마음이 복잡했다. 이런 건 다 때려치우고 그저 커피나 마시고 싶은- 느릿하게 다시 움직인 발걸음은 포와로를 지나쳤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 사무실은 적막했다. 잠시 사무실을 훑다가 이곳의 주인과 눈을 마주쳤다. 어서 오십쇼!! 라고 말하던 코고로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는 유즈를 소파로 안내하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왔다. 뺨을 뚫어버릴 듯 닿아오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코고로가 내어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아, 커피 끊기로 했는데. 유즈는 잠시 다른 곳을 향하려던 생각을 애써 붙잡았다. 뭐라고 말을 해야 이 사람이 의뢰를 받아줄까.
“…도와주세요.”
“그러니까… 미즈하라 군의 무엇을…?”
“3년 전의 연쇄 살인범을 잡는 거요. 아시잖아요. …‘저’에 대해서.”
애써 미소를 짓던 코고로의 얼굴이 유즈의 느린 목소리를 따라 점차 굳어갔다. 유즈는 조심스럽게 종이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을 코고로의 앞으로 밀어놓고 천천히 의뢰의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키사키 씨가 제 언급을 많이 했을 거란 거 알아요. 제가 경찰을 그만둔 것도 알고 계시겠죠. 제가 떠나면서 완벽하게 미제 사건이 된 사건이 하나 있어요. 탐정님도 알고 계시죠? 어린아이가 있는 집만 노려서, 부모를 죽이고 아이를 납치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아이마저 무참하게 살해하는 살인범. …얼마 전에 경시청에 이런 우편물이 도착했어요.”
“이건…….”
“누가 봐도 저를 향한 우편물이죠. 이상하죠. 저는 형사를 그만둔 지 한참 됐는데. …요청에 따라서 어제부터 잠시 복귀하게 됐어요. 수사 1과로. 큰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발 도와주세요. 제가 일을 안 한다는 게 아니에요.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언급되고 싶지 않아요.”
“…그래.”
코고로는 종이에 쓰인 글을 읽으며 유즈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유즈가 말을 덧붙였다.
“제가 의뢰를 드린 것과, 이 수사에 합류한다는 것은 관계자… 그러니까 경찰들 말고는 몰라요. 탐정님께서도 필요 없는 인원에게는 해당 사실을 비밀로 해주셨으면 해요. 키사키 씨에게도요.”
아무래도 일반인으로 산 지 3년이나 지나서… 벌써 지치네요. 그렇게 말하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 유즈를 본 코고로의 머릿속에 언젠가 그의 아내, 에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걔는 항상 세상을 다 산 듯한 미소를 지어. 나이도 어리면서 뭔 생각이 그렇게 많은지. 그렇게 말하면서 ‘유즈’를 떠올리는 얼굴이 마치 딸인 란을 바라볼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다.
한참을 침묵 속에서 손만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있던 유즈가 조용히 인사를 한 뒤 의뢰비의 선금을 내려놓고 사무실을 나갔다. 부탁드려요. 꽤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겨있던 코고로는 곧 코난이 하교할 시간이란 것을 알고 혀를 차며 기차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가노… 나가노…. 코난과 란에게는 이 갑작스러운 나가노행을 뭐라 설명할지 걱정이었다.
“거기 뭐야!! 현장에서 나와!!”
신고를 받고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한 야마토 칸스케의 외침에 천천히 일어나서 뒤를 도는 이가 익숙하다고 코난은 생각했다. 단정한 검은 머리. 햇빛을 받아 평소보다 푸른색이 더 많이 감도는 회색 눈. 차분하고 어딘가 처연한 미인상. 아마도 도쿄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걸까? 호선을 그리지 않는 일이 드문 입이 열렸다. 그 얇은 미성에 코난은 정신을 차렸다.
“이번에 수사 협조를 부탁드렸던, 미즈하라 유즈… 경부입니다. 제 기억에는 아마 3년 전에도 비슷한 요청을 드렸던 것 같네요.”
“유즈 형!! 경찰은 그만뒀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만뒀지. 그런데 이번엔 내가 연관된 사건이라… 어쩔 수 없었는지 위에서 도와달라고 부탁했거든.”
잠깐의 복직 같은 거야. 유즈는 느릿한 발걸음으로 폴리스 라인을 빠져나오며 당황한 얼굴의 코난의 머리를 헝클였다. 그는 뒤에 서 있던 코고로와 눈인사를 나눈 뒤 설명을 바라는 듯한 야마토와 똑바로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더 보실 필요도 없이 현장은 3년 전과 동일해요. 사망한 보호자, 실종된 아이. 다른 건 피해자를 찌른 칼의 종류, 정도인 것 같네요.”
“벌써 다 확인을 했단 말입니까?”
“네.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저에겐 여전히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으니까요.”
유즈는 피가 말라가기 시작하는 장갑을 벗으며 씁쓸한 미소를 걸고 덧붙였다. 추가로, 이건 저에 대한 도전장… 비스무리한 것 같아요. 3년 전에 집어넣지 못하고 그만뒀거든요, 형사. 뒤에서 다가오던 타카아키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분명 동생이 마지막으로 남겼던 편지에서 언급되었던 친구가 딱 3년 전에, 경찰을 그만뒀다고 했었던 것 같았다. 그는 이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장갑을 고쳐 끼고 한 번 더 현장을 보겠다며 유즈를 지나쳤다. 푸른 회안이 저도 모르게 따라가려던 시선을 억지로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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